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스트 코로나 (문단 편집) === 오미크론 대유행 이후 === 마치 스페인 독감, 홍콩 독감 따위가 크게 유행했음에도 우리의 생활 문화가 크게 바뀌지 않고 기존의 삶을 되찾았던 것처럼 코로나19도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자발적 변화가 아닌, 질병 따위의 원치 않던 힘에 따른 생활의 변화에 대한 인류의 심리적 저항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변화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것인데, 이게 자발적인 필요에 따른 것이면 기꺼이 일어나지만 원치 않는 것이면 잃어버리게 생긴 기존 것에 대한 강한 회귀 심리가 작용하고, 이것이 오히려 당면한 위기를 이기는 원동력이 된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35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지만 일제 말까지도 독립 의식은 이어졌고, 오늘날 한국인이 일제강점기에 대한 반감과 일본 우익에 대한 적대감을 느끼는 것도 35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거치면서도 심리적 저항이 꺼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35년의 일제 통치로 삶의 양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면 한국인들은 일본어를 쓰고 일본 문화를 따르는 '뉴 노멀'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초기에 뉴 노말 관련 이론을 주로 제시한 인물은 방역전문가보다는 유발 하라리나 김누리 교수 등 비전문가였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대부분의 국가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면서 포스트 코로나란 이름이 어느 정도로 의미있는지에 대한 의견도 생겼다. 많은 이들이 느끼기에 코로나 이후의 삶과 이전의 차이가 생각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 단, 이는 일반 시민들의 입장이고 [[일용직]] 노동자, 가뜩이나 각종 질병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고령자 등은 사정이 분명히 달라졌다. 말하자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사회상을 느끼는 바가 사회 계층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지게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양지에 있던 계층은 코로나 전과 후의 삶에서 유의미한 변화는 못 느끼게 됐지만[* 물론 일부 비대면 활동 및 재택 근무의 확대와 같은 점은 케바케로 예외이긴 하지만 이 같은 변화는 수의적인 것으로, 코로나로 인해 되찾을 수 없어진 삶이니 뭐니 하며 따질 것들은 아니다. 결국 일반 시민층 입장에서는 코로나 전의 삶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음지에 있던 계층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맞이한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음지에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목도 덜 받고 양지 계층의 일상 회복 분위기에 묻히는 것은 덤이다. 이들은 2022년 5월 10일부터 가동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임기 기간 동안 각별히 관리해야 할 계층으로 이슈화할 가능성이 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